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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매거진] 2009.09.02 베트남 학생들의 영원한 ‘교장
작성자 김가영 등록일 2010-10-27 18:33:08 조회수 980

 

베트남 학생들의 영원한 ‘교장 선생님’

처음 시작은 베트남 여성들에게 콩나물 재배법과 쇠꼬리 판매를 가르쳐 준 것이었다. 당시 조금씩 늘어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립시켜 준 것이다.

김영신 한베문화교류센터 원장과의 인터뷰는 한양대병원 로비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베트남에서 17년째 거주 중인 그는 마침 베트남 학생의 언청이 수술을 위해 입국해 있었다.

그는 1993년 베트남에 정착한 뒤 베트남의 인재 양성과 문화 교류에 쏟아 부은 베트남 민간 외교의 터줏대감이다. 김 원장은 “단순한 구호 수준의 봉사활동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젊은 시절 한국의 마더 테레사를 꿈꾸며 아프리카 구호 활동을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학과를 졸업한 남편 심상준 씨의 권유로 하와이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전까지는 가난한 나라라고 하면 아프리카만을 생각했는데, 당시 베트남의 낙후된 현실이 그를 붙잡았다. 태양은 뜨거웠고, 원시 마을 같은 곳에는 오두막이 아닌 시멘트 덩어리로 된 건물들이 색칠도 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

처음 시작은 베트남 여성들에게 콩나물 재배법과 쇠꼬리 판매를 가르쳐 준 것이었다. 이런 봉사활동도 있나 싶었지만, 당시 조금씩 늘어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립시켜 준 것이다. 또 김치 담그는 법과 청소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한국인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영어를 배운 아이들에게는 PC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미국 회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어떤 경우든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김 원장의 방식이었다.

한두 사람 알음알음 가르쳐 주던 클래스는 그의 거실을 개방해 한국어 강습을 무료로 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어느덧 베트남에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어 학원이 생기고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생기면서 거실 강습은 자연스레 접게 되었지만, 김 원장의 인재 양성 활동은 새롭게 확대되고 있었다.

이후 그녀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베트남 대학생과 한국 학생들과의 교류 추진이었다. 특히 한국어·베트남어 말하기 대회는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분야다. 매년 개최되는 베트남 ‘전국 한·베 말하기 대회’는 베트남 유일의 ‘매년 개최되는’ ‘한국인도 참가하는’ ‘전국적 대회’다. 예전에는 2년에 한 번 지역별로 개최되며 베트남 학생들만 참가했었다.

“한국인이 베트남어로 베트남 문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신기해요. 전국적으로 TV에도 크게 소개되고 학생들의 반응도 뜨거워요.” 이 외에도 매년 한글날인 10월 9일 베트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로 ‘도전 골든벨’을 진행하고 베트남 신문을 번역해 한국인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번역 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한베문화교류센터의 활동은 한국인이 매달 베트남 어린이에게 20달러를 지원하는 일대일 아동 결연 사업, 한국·베트남 다문화가족 2세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주부를 위한 한국 요리, 한국어 교육까지 다양하게 확대됐다.

김 원장은 “베트남의 인재 양성을 통해 보람도 느끼지만, 이들이 베트남을 이끌 인재잖아요. 이들이 친한파로 성장하면 한국의 위상도 더불어 크는 것 아닌가요”라며 관심과 성원을 부탁했다.


<한베문화교류센터 원장>

약력: 1954년생. 경희대 사학과 졸업. 90~92년 미국 하와이 거주. 1993년부터 현재까지 베트남 하노이 거주. 2005~2007년 하노이외국어대학 한국문화·음운론 강사. 2004년 한베문화교류센터 원장(현).

한국 경제 매거진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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